금남문절사(錦南文節祠), 매죽헌사우 > 달전리 매죽헌사우

본문 바로가기

세종금남-세종시 금남면 커뮤니티 LOGO

금남10경

금남문절사(錦南文節祠), 매죽헌사우

  • - 첨부파일 : 01.jpg (269.0K) - 다운로드
  • - 첨부파일 : 03.jpg (183.6K) - 다운로드
  • - 첨부파일 : 04.jpg (284.4K) - 다운로드
  • - 첨부파일 : 05.jpg (223.4K) - 다운로드
  • - 첨부파일 : 07.jpg (286.0K) - 다운로드

본문

금남문절사(錦南文節祠), 매죽헌사우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문절사길 55-7[달전리 330-5]

소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성삼문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개요:
문절사(文節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을 제향하기 위하여 지어진 사당이다.

공식 명칭은 ‘매죽헌사우(梅竹軒祠宇)’이다.

성삼문의 정려인 문절사가 금남면 달전리에 세워진 때는 1903년으로, 사실 달전리는 성삼문이 출생하였거나 생전에 머문 적이 없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 성삼문의 정려가 세워진 것은 달전리에 세거한 창녕성씨(昌寧成氏)들의 사족 활동 때문으로, 성삼문 추모 및 추숭 활동에서 가장 후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성삼문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1438년(세종 20)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한 후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명나라에 가서 음운(音韻)[한자의 음(音)과 운(韻)을 아울러 이르는 말]과 교장(敎場) 제도를 연구하여 1446년(세종 28) 10월 9일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데 크게 공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 허조 등과 단종복위 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하여, 세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능지처사(陵遲處死)[대역죄를 범한 자에게 과하던 극형]를 당하였다.

후대에 사육신의 충절이 재평가되면서 성삼문의 유허(遺墟)[오랜 세월에 쓸쓸하게 남아 있는 옛터]가 남아 있는 곳곳에 그를 제향하는 서원이 세워졌다.

그러던 중 1902년(광무 6) 성삼문의 15대 방손(傍孫)[시조는 같지만 직계에서 갈라져 나간 방계(傍系) 혈족의 자손] 성기운(成璣運)[1847~1924]이 명정 상소를 올려 성삼문의 충신명정을 받게 되었고, 바로 이듬해인 1903년(광무 7) 방손 성주영(成周英)이 봉사손(奉祀孫)[조상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으로 결정되면서 달전리에 단사를 세우고 봉사하도록 하여 문절사가 건립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사진출처: https://www.sejong.go.kr/prog/blog/eng/sub03_06/view.do?mode=list&nttId=3503&pageIndex=18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 건 - 1 페이지